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단 편집) === 북한의 대남 침략 공세 강화 === 북한은 베트남 전쟁 당시 [[1.21 사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다소 과격한 대남 침략 공세를 진행했다. >조선혁명을 완수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반부혁명력량을 강화하는것과 함께 반드시 남조선에서 강력한 혁명력량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중략) 남조선인민들은 결코 적들의 거짓선전에 속지 않을것이며 오늘의 사태를 보고만 있지 않을것입니다. 윁남전쟁이 오래가면 갈수록, 거기에 끌려가는 괴뢰군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남조선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미제와 박정희도당의 파병책동을 반대하는 세력이 점점 늘어날것입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남조선인민들은 더욱더 각성될것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쑤들을 반대하는 혁명투쟁에 떨쳐나서게 될것입니다(김일성, 1983b: 245). 김일성은 베트남전쟁으로 남한 국민들이 반전/반정부 의식이 생겨 남조선혁명에 유리한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각급 당 책임비서들에게 "남조선에서 혁명조직을 잘 꾸리고 선전 사업을 강화하여 남조선 인민들을 하루라도 더 빨리 각성"시키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1.21 사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이 일어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1968년 8월 [[통일혁명당]]이 발각되면서 이를 주도한 간부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에 대한 의도는 무력 적화통일 기도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한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구와 베트남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미국의 시각'으로 나뉜다.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시각'이 더 타당한 분석으로 판단되고 있다. [* 김진환. (2015). 베트남전쟁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05, 41-70.] 한편, 북한의 이러한 도발 중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대응 차이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균열을 내기도 했다. 1.21 사태에 대해 존슨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에는 적극적인 대응을 보였다. 이런 차별적인 대응은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해 미국과의 동맹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도 '한국의 시각'과 '미국의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갈등하는 동맹(서울: 역사비평사, 2010), 56p-61p]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